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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ologue

만추

 

 

직장을 그만둔 지 두 달이 지났고, 계절은 어느덧 가을에서 겨울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얇은 원피스 차림의 내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며, 땅을 밟는 터라 아찔하게 현기증이 몰려 왔고, 날짜를 계산해 보니 근 한 달만에 밖으로 나온 셈이었다.

우체통은 각종 고지서와 광고 전단지가 뒤엉켜 빼곡히 들어 차 있었고, 주차장에 방치해 놓은 차는 낙엽에

덮혀 엉망이었다. 손으로 슥, 낙엽을 털어내자 차 창모습이 비쳤다. 거칠어진 얼굴과 생기를 잃은 두 눈이, 언젠가 보았던 아스팔트 위의 죽은 고양이를 연상케했다.

패배자_ 쓰디 쓴 단어가 입 안을 맴돌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 왔다. 살아 있음이 서글펐고 앞으로 살아가야함이 막막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나는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는 텅 빈지 오래였고, 그걸 눈으로 확인하자 참을 수 없이 허기가 몰려왔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밥 숟가락은 위로 향한 다는 말이, 실연 당했을 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는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하나로 단정히 묶고, 옷장에서 두꺼운 코트를 꺼내어 입은 후, 구두를 신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눌러 밟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만추에서 벗어날 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