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Monologue

트루먼 쇼

 

 

 

 

정오가 조금 지나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전화를 받았더니 다짜고짜 내 이름을 대며 어디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집이라 답하고 누구냐고 묻자 경찰이라며 새벽 4시 30분 경, 어떤 어플에 자살 암시글이 올라왔고 

아이디를 조회하니 명의자가 나로 되어있단다. 신종 스팸전화인가 싶어 그런 사실 없다고 답하며 끊으려고 하자 사실 확인을 위하여 경찰서로 나와 달라고 하였다. 긴가민가하여 알겠다 답하고 멍하게 앉아있는데 소방서를 시작으로 가족과 지인에게서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무사해요_라고 일일이 생존신고를 한 후,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 세안도 하지 않은 채 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형사계 팀장님은 나의 신원을 확인 하더니, 아침부터 당신 때문에 수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산을 샅샅이 뒤졌다며 도대체 왜 그런 글을 왜 올렸냐고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새벽 4시 30분, 나는 그 시간에 소액결제 사기를 당한 M양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해야하는 것인지, 휴대폰 결제 중재센터에 전화를 하여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정신없이 대책을 세우고 있었던터라 나는 그러한 글을 쓴 사실이 없노라 이야기하며, M양과 주고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간에 나는 이러고 있었는데  손이 네 개도 아니고 말이 되냐고 하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분명히 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으로 가입된 아이디란다. 그리고 그 글을 쓴 곳이 내가 사는 곳 인근의 산 주변으로 지정 되어 있다고 하였다.

본의 아니게 죄송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러한 글을 쓴 사실도 없고, 그 시간에 산에 올라갈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자 팀장님은 그럴 리가 없는데, 라는 말만 반복하며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며칠 전 잃어 버린 휴대전화와 관련이 있는 건지, 명의를 도용 당한 건지, 해킹을 당한 것인지 아무리 내가 쓴 글이 아니라고 하여도, 이미 경찰에게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자살암시글을 써놓고 홀연히 산으로 올라간 실없는 여자였다. 한낱 해프닝으로 찝찝하게 마무리를 짓고 경찰서를 나오는데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더라.

그런데, 참 우스운게 나의 가족과 지인과 전 직장과 전전 직장까지 다 전화를 했으면서 정작 당사자인 나에게는 왜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일까? 내가 자살했다고 단정짓고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인지, 그리고 새벽 4시 30분에 글이 쓰여졌다고 했는데 왜 정오가 되어서야 위치추적을 한건지, 그리고 신고자는 누구인지, 내 아이디를 이용해서 나인 척, 그런 글을 올린 사람은 누구인지, 미스테리다.

 

혹시, 나 트루먼 쇼의 짐캐리와 같은,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거 아닐까? 이젠 별 일을 다 겪는다. 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