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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ologue

이별기념일


'우리 이제 정말 끝난거야?'
'응.'
'일말의 희망도 없는거니?'
'미안해.'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려고 네 시간을 거쳐 서울로 간 건 아니였다. 우리가 끝났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새벽, H의 보고싶다는 전화 한 통에 마지막으로 그와 잘해보고싶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이 밝자마자 티켓을 끊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나에게 잘해 줄 자신도 없고 줄 것도 없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안괜찮아.라며 나를 밀어냈다. 그는 시종일관 냉정하게 나를 대했고 마지막으로 '너에게 지쳤다.'라는 그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려 그렇게 한 시간도 채 견디지 못하고 곧장 다시 돌아왔다.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사랑했던, 나에게 사랑을 주었던 그 사람인가 싶을만큼 차갑고 또 차가워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유리 조각이 되어 심장에 콕콕 박혔다.'내가 다 벌 받을게.'라는 말에 그래 나쁜새끼야.라고 소리치지 못하고 당신이 불행한 건 원치 않는다며 그래도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비련의 여주인공같은 말만 뱉어 냈으니 그래. 지칠만도 하겠다. 한 번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을 열어버리면 한 사람에게만 올인하는 못난 내 사랑때문에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평생 나만 사랑하겠다는, 절대 내 손을 먼저 놓치않을거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말에 순간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마음을 줘버렸으니 그래 내가 바보였던 거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고르고 골랐던 원피스는 온통 눈물 범벅이 되고 평소엔 잘만 신고 다녔던 하이힐도 발 뒷꿈치를 다 까버려서 피가 흐르고 화장은 다 지워지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몰골로 실연당한 여자의 티를 내며 그렇게 어떻게 포항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쏟아만 내고 있을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건내 준 티슈를 받고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지도 못할만큼. 내 옆자리의 사람이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도 모를 만큼 몽롱한 정신으로 두 시가 되어서야 도착해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신경안정제를 한 웅큼 입에 털어 놓고서도 잠들지 못했다. 사랑에 그 만큼 속았으면서 이젠 정말 그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말아야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