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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ologue

일요일.



새로 산 보라색 섀도우와 나비 귀걸이가 몹시 마음에 든다.
청보랏빛이 감도는 머플러를 함께 둘렀더니 꽤 어울리는 것 같다. 백화점을 세 바퀴 돌고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구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식당가로 올라가 생과일 주스를 입에 물고 잠시 쉰다. 일요일이라 백화점 안이 북적북적하다. 문득 어느 일본 작가의 소설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백화점 지하에 마련된 식품코너에 그 많은 사람들이 무얼 먹을지 고민한다고 생각하면 징그럽다는 내용의. 에쿠니 가오리였던가, 요시모토 바나나 였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기가 들어 주스를 반도 마시지 못하고 다시 1층 화장품 코너로 내려간다. 스킨 로션을 사야하는데 브랜드가 다양해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 두 군데를 골라 테스터를 하고 가격이 조금 더 싼 쪽을 고른다. 엄밀히 따지자면 가격은 비슷하지만 용량이 더 많은 쪽으로. 친절한 판매원은 샘플들을 꼼꼼히 챙기며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달란다. 얼른 계산을 하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우습지만 나는 아직 이런 친절에 익숙치 못하다. 바람이 차다. 7시가 가까워 오자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기 전 쇼윈도를 거울삼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선다. 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을 소개 받기로 한 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 쪽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웃는 인상이 선한 사람이다. 소주 한 병을 주고 받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른 사람이구나 싶어 안심이 된다. 내 모습이 마치 딸의 남자친구를 마주한 엄마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친구를 아껴주는 모습이 눈에 보여 다행이다 싶다. 친구 커플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융진의 목소리에 가슴이 뛴다. 하루가 지나간다. 일요일이 지나간다.